Try to Remember
다방의 푸른 꿈
한국 최초의 걸그룹 미국으로 향하다.
1953년 부산의 미군부대 클럽에 10대 초반의 한국인 소녀 셋이 무대에 오른다. 김숙자, 김애자, 김민자 셋으로 이루어진 김시스터즈였다. Ole buttermilk sky와 Candy & cake 단 두 곡을 무조건 외워서 부른 첫 무대에서 김시스터즈는 앙코르를 받았다. 앙코르곡 역시 같은 곳이었다.
준비된 다른 곳이 없었던, 한국 전쟁의 와중에 부산에서 결성된 이 '걸그룹'은 미군부대 클럽을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장안의 화제가 된다.
'너희는 미국에 가면 큰돈 벌 수 있다'고 많은 미군들이 김시스터즈의 미국행을 장담했지만 번번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었다. 1958년 어느 날 톰 볼(Tom Ball)이라는 미국의 실력 있는 매니저가 일본에 왔다가 이들의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건너왔고, 김시스터즈를 오디션하면서 드디어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1959년 1월, 10대 후반의 소녀 셋이 미군 군용기에 오른다.
오키나와를 거쳐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김시스터즈의 첫 공연장은 선더버드 호텔, 여기서 1개월 공연 후 더 유명한 스타더스트 호텔 클럽과 8개월 계약을 맺는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에드 설리번 쇼'에 1959년 9월에 전격 출연하고 라이프지 1960년 2월호에 특집기사가 실리는 등 김시스터즈는 미국에 도착한지 불과 1년여 만에 센세이션의 주인공이 되었다.
몇 년 전 각본을 쓰다 지쳐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진 것이 있는데, 문득 '번안가요'라는 키워드가 떠올라 '한국번안가요사'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다.
1960년대, 1970년대에 유행했던 번안가요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오리지널보다 훨씬 먼저 강하게 다가왔다. 나중에 비지스(Bee Gees)의 원곡(Massachusetts)을 들었지만 송창식, 윤형주가 함께 부른 번안곡 '고별'이 더 좋았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의 원류를 결국 번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촬영을 하면서 리시스터즈, 정시스터즈 등 1960년대 초반부터 '새드무비', '워싱턴 스퀘어'등의 번안가요로 활약했던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디를 시발점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김 시스터즈 떠난 후'로 잡았다. 한국 걸그룹의 원조이자 미국 본토에 진출한 한류의 원조로서 김시스터즈는 너무나 명확한 이정표였다. 1959년 김시스터즈가 한국을 떠난 후 비슷한 성격의 '걸그룹'들이 무수히 생겨난다.
이때 에드 설리번 쇼 영상을 하나 접했다. 김시스터즈는 그 유명한 에드 설리번쇼에(비틀스보다 많은) 무려 22번을 출연했는데 1963년도에는 그녀들의 어머니인 이난영과 그 유명한 '마이클 노를 저어라'를 함께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아주 흥겨운 노래와 율동임에도 묘한 감동이 느껴졌다.
박찬호가 메이져리스에 진출한 것과 같은 민족적 자긍심에서 오는 감동은 아니었다. 이들의 음악 세계 그 자체에서 오는 울림에, 그 자리에 없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김해송의 빈자리가 쓸쓸하게 다가와서였을까?
2년 후인 1965년에 이난영은 49세의 나이에 세상을 뜬다. 1930년대 무명의 이난영을 일약스타로 만든 '목포의 눈물'은 40대 이상의 세대에게는 여전히 국민가요 중의 한 곡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오빠는 풍각쟁이야'로 2000년대 이후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한 김해송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천재 작곡가였다. 이들은 1930년대 말에 결혼했고, 오케레코드사에 함께 전속이 되면서 김해송이 작곡한 '다방의 푸른 꿈'을 이난영이 불러 히트한다.
해방 전후로 이난영과 김해송 콤비의 KPK 악극단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 전쟁 때 단장 김해송이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한국 전쟁의 와중에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이난영은 음악 재능을 이어받은 딸 숙자, 애자와 오빠(작곡가 이봉룡)의 딸 민자를 묶어 'KPK 쇼단'을 구성했고, 이게 우리나라 한국 최초의 여성보컬 그룹이 된다.
당시 팀 이름도 없이 활동한 이들은 일찍이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보컬그룹으로 활동한 경험을 되살린 어머니 이난영의 피나는 조련을 받았다. 이후에 '김시스터즈'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일반 무대와 미 8군 무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미 8군가수의 공식 출범과도 같았던 여성 보컬 트리오 김시스터즈는 이렇게 1959년 미국으로 진출한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입성하여 한국 대중음악계의 신기원을 연다.
Synopsis of "Try to Remember"
Lee Nan-young, a famous Korean singer, made her debut at OK Records in the 1930s, and married Kim Hae-song, a genius composer at the time. In 1945, the years of liberation, KPK musical troupe gained popularity with the duo of Lee Nan-young and Kim Hae-song untill Kim got kidnapped to North Korea. During the Korean War, Lee produced Korea's first vocal girl group 'Kim Sisters' with her daughters Sukja, Ae-ja and her niece Min-ja who inherited their parents' musical talent. With the help of Lee's training effort, 'Kim Sisters' caught popularity at the American 8th Army base. They also had a chance to perform in Las Vegas, for the first time as Asians, making strong appeal to Americans.
Audience can meet three shy girls who fluently sang songs in English without even knowing the language, through the remembrance of Min-ja in the film.
Kim Dae-hyun
Born in 1965, Kim Dae-hyun graduated from Dongguk and Yongin Graduate School for film studies after finishing management course at Korea University. He directed many independent films such as < A Black Christmas Eve >, < Bloody Innocent >, < The Origin of K-Pop > and so on. He is currently working as a director and the president of independent film company 'Indeline.'
